주님은 주(主)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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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안교회 작성일15-09-20 03:10 조회5,06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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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유난히 성장앓이를 하며 성장반을 마쳤기에 마치 ‘고3의 시련’과도 같은 제자훈련을 자원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신청한 훈련이 3월에 시작되자 예상했던 난항이 거듭되면서 주일 오후가 곤혹스러웠다.
훈련 초반은 ‘질풍노도의 사춘기’처럼 마음고생이 심했다. 멤버도 좋았고, 누가 나를 흘겨보거나 이상한 말로 상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내키지 않는 마음과 폭주하는 과제 때문에 스스로 겪는 내홍은 형언할 수 없었다. 급기야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내가 이 고생을 자초했나? 하는 의구심과 자책으로 포기를 놓고 격한 갈등을 겪을 즈음 첫 번째 기적을 경험하였다.
20주라는 긴 시간 동안 변함없는 갈등을 안은 채로 매주일 훈련에 임하는 그것이 바로 기적이었다.
나의 완악한 마음이 보드라운 첫 순처럼 야들야들 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은 극에 달하였고, 그래서인지 신경성 방광염과 목 디스크로 인해
훈련을 포기할까 몇 번이나 망설이면서 가시 돋친 장미처럼 주변인들과 나 자신을 마구 찔러댔다.
그런 나를 밉다하지 않고 그때마다 위로하며 기도해 준 남편과 기도후원자, 목장식구,
그리고 나의 왜곡된 눈을 말씀으로 바로 잡아주시며 인내로 나를 받아준 훈련자와 제자반 식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가 만난 제자훈련 졸업생들은 모두 다 성경박사에, 초탈한 도사가 된 듯 보였기에 ‘나는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어!
제자훈련은 나 같은 초보자가 받을 훈련이 아닌데..’ ‘나는 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왜 나를 부르셨을까?,
예수님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근원적인 이 질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강한 자아와 충돌했고
그때마다 그 가시는 ‘자기부인’을 거부하는 나를 찔러 엄청난 고통의 신음을 해야 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나를 고통가운데 버려두시지 않으셨다. 마지막 3권을 공부하면서 내 안의 가시들은 하나씩 뽑혀 나갔다.
제사보다 나은 순종, 예수님처럼 섬기는 봉사, 고난에 대한 믿음의 반응과 태도 등에 대해 배우면서 나의 목마름의 근원을 깨달았다.
신앙의 연조도 짧고 성경지식이 부족하여 생긴 갈등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명확한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이런 내가 제자훈련을 한 것에 대해 문제 삼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신앙생활 불과 3년 남짓한 이 때 나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내홍과 청량한 해답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누군가 나의 제자훈련을 낙제라고 하여도 나는 이로 인해 주님께 감사드린다.
훈련은 무사히 마쳤지만 여전히 물질과 시간, 그리고 온전한 순종에 대한 미제들을 안고 있다.
이것이 또 나를 찌르는 가시가 된다 할지라도 나는 선택된 주님의 백성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할 것이다.
맹독의 가시라할지라도 한낱 티끌로 바꾸시는 주님에 대한 이 확신으로 내 안의 남은 가시들을 기쁘게 뽑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우여곡절 끝에 신청한 훈련이 3월에 시작되자 예상했던 난항이 거듭되면서 주일 오후가 곤혹스러웠다.
훈련 초반은 ‘질풍노도의 사춘기’처럼 마음고생이 심했다. 멤버도 좋았고, 누가 나를 흘겨보거나 이상한 말로 상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내키지 않는 마음과 폭주하는 과제 때문에 스스로 겪는 내홍은 형언할 수 없었다. 급기야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내가 이 고생을 자초했나? 하는 의구심과 자책으로 포기를 놓고 격한 갈등을 겪을 즈음 첫 번째 기적을 경험하였다.
20주라는 긴 시간 동안 변함없는 갈등을 안은 채로 매주일 훈련에 임하는 그것이 바로 기적이었다.
나의 완악한 마음이 보드라운 첫 순처럼 야들야들 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은 극에 달하였고, 그래서인지 신경성 방광염과 목 디스크로 인해
훈련을 포기할까 몇 번이나 망설이면서 가시 돋친 장미처럼 주변인들과 나 자신을 마구 찔러댔다.
그런 나를 밉다하지 않고 그때마다 위로하며 기도해 준 남편과 기도후원자, 목장식구,
그리고 나의 왜곡된 눈을 말씀으로 바로 잡아주시며 인내로 나를 받아준 훈련자와 제자반 식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가 만난 제자훈련 졸업생들은 모두 다 성경박사에, 초탈한 도사가 된 듯 보였기에 ‘나는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어!
제자훈련은 나 같은 초보자가 받을 훈련이 아닌데..’ ‘나는 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왜 나를 부르셨을까?,
예수님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근원적인 이 질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강한 자아와 충돌했고
그때마다 그 가시는 ‘자기부인’을 거부하는 나를 찔러 엄청난 고통의 신음을 해야 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나를 고통가운데 버려두시지 않으셨다. 마지막 3권을 공부하면서 내 안의 가시들은 하나씩 뽑혀 나갔다.
제사보다 나은 순종, 예수님처럼 섬기는 봉사, 고난에 대한 믿음의 반응과 태도 등에 대해 배우면서 나의 목마름의 근원을 깨달았다.
신앙의 연조도 짧고 성경지식이 부족하여 생긴 갈등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명확한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이런 내가 제자훈련을 한 것에 대해 문제 삼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신앙생활 불과 3년 남짓한 이 때 나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내홍과 청량한 해답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누군가 나의 제자훈련을 낙제라고 하여도 나는 이로 인해 주님께 감사드린다.
훈련은 무사히 마쳤지만 여전히 물질과 시간, 그리고 온전한 순종에 대한 미제들을 안고 있다.
이것이 또 나를 찌르는 가시가 된다 할지라도 나는 선택된 주님의 백성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할 것이다.
맹독의 가시라할지라도 한낱 티끌로 바꾸시는 주님에 대한 이 확신으로 내 안의 남은 가시들을 기쁘게 뽑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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